습관과 우연의 브리콜라주

AI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
습관과 우연의 브리콜라주

이번 글은 AI의 도움 없이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또 AI와 대화를 나누며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프롬프트와 답변이 이어지며 글이 조립되는 방식은 언제 봐도 브리콜라주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에 잡히는 생각들을 던져놓고,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일은 AI가 도와줍니다. 이 기술이 없던 시절의 글쓰기는 이제 희미하게만 남아 있습니다.

사전은 습관을 “오랫동안 되풀이해 저절로 익힌 행동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예전부터 작은 것들을 연결해 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집중력은 매우 짧았기 때문에, 금세 불타오르곤 또 다른 곳으로 쉽게 옮겨가곤 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다가 별이 잘 보이는 밤이면 저게 무슨 별인지 혼자 맞혀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별자리를 이어봅니다. 초등학교 때 우주정보소년단 활동을 했던 덕분인지, 우주와 과학에 관심은 오래 남았거든요. 하지만 그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물리학과 수학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까지는 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의 힘으로 허락된 집중력과 지능은 그 정도였구나 하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AI는 제게 일종의 산소통 같습니다. 얕은 지식으로도 오랫동안 정보의 바다를 깊게 잠수할 수 있도록 호흡을 도와주니까요. 그래서 AI에게 제 파편적인 생각들을 먼저 던져보는 이 글쓰기 방식도 언제부턴가 나에게 하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이게 부정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외주 주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혼자 글을 완성하던 시절보다 마음은 편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능력도 있지만, 새로운 능력을 더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느낌대로 자르고 붙이는 능력을 더 또렷하게 키우자고요.

최근 코맥 매카시와 산타페 연구소를 알게 되어, 그가 쓴 글 <The Kekulé Problem>을 읽었습니다. 코맥은 우리가 의식하는 언어라는 건 실제 사고 과정 중 극히 일부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무의식적 체계가 대부분의 처리를 끝낸 후 의식은 그 결과를 아주 일부분 받아본다고요. 따라서 언어라는 건 생각을 만들어내는 도구라기보단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발달한 도구라고 말합니다.

그 글에 담긴 생각이 저를 오래 붙잡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글을 쓸 때 AI를 통해 먼저 정리되지 않은 말을 던져보고, 그 안에서 이미 있었던 생각의 조각들을 역으로 찾아가게 되는 방식으로 제 생각을 언어로 옮겨오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조립한다고 믿는 것들이 어쩌면 이미 제 안 어딘가에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이 조립은, 제가 의식해서 애쓰는 순간이 아니어도 세상의 흐름 속에서 먼저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치 제가 AI와 이 "브리콜라주 글쓰기"를 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비슷하게 삶이 먼저 조각들을 제 앞에 제시하고, 저는 그중 일부를 고르고, 또 다른 조각들이 뒤따라오는 식의 경험들입니다.

올해 여러 일을 겪으며 이 사실을 뚜렷하게 느낍니다. 히말라야산맥의 마르디히말 트래킹을 가게 된 일부터가 그랬습니다. 동생과 “어디 가보고 싶어?” 하고 아무렇게나 말을 던지다 제가 장난처럼 “히말라야!”라고 말했는데, 다음 날 마침 지인이 히말라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일도 한가했던 때라 큰 고민 없이 그 여정에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여행 자체가 이미 우연의 조각들로 시작된 셈입니다.

등반은 걷다 보면 뜬금없이 전혀 다른 것들과 이어지는 순간들이 자꾸 생겼습니다. 낯선 풍경이 어딘가에서 본 영화나 게임에서 본 순간들과 겹쳐 보이기도 했고요. 덕분에 몸은 힘들었지만 매우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우연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행과 인연을 만들게 되거나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또 포카라의 비 온 뒤 언덕을 오르는 길에선 일행이 꿈에서 보았다는 바로 그 풍경과 마주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의 하루하루가 어떤 계획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올해는 정말 바쁘게 여러 경험으로 채워졌습니다. 제 언어의 한계에도 부딪혀 보고, 몰랐던 세상도 접해보고, 저보다 멋진 분들을 만나 생각을 듣고, 저의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 갔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늘 순탄한 건 아닙니다.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닥쳐오는 불안이 생길 때면 폭류경의 내용을 곱씹어봅니다. 그 구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넜습니다." 저에게 가만히 있지 않음은 습관이 선택한 조각들을 붙여보는 일이고, 애쓰지 않는 건 우연이 데려오는 조각들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어지고 채워질 제가 이왕이면 하나의 멋진 브리콜라주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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