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버텼다는 말 대신
직장생활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버틴다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무래도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거기서 내가 깎이고 마모되는 경험을 하니까. 마모된 그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싶거나 그렇게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렇듯 이 말은 도무지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한껏 눌려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가볍겐 지나칠 수 없는 상태를 견뎠다는 의미를 담아서. 이 회사에서 보낸 시간도 그러했다.
익숙해진 곳을 떠나기
2026년이 되고,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직업을 갖게 되고 겪었던 일을 녹여서 생존기를 적었다. 회사의 글쓰기 클럽을 통해 이 공간에 남긴 첫 글이기도 하다. 이렇게 게임 내러티브 디자이너로서의 생존기 글을 마무리 하고 3개월 뒤에 퇴사를 선택하다니 인생이 참 재밌다.
...적어도 계속 관찰하고 배우며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때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냈는데, 이젠 어디서 배우게 될까?
이 회사는 나한테 직업인으로 산다는 것이 뭔지 배울 수 있게 해준 첫번째 장소였다. 그 전에도 사회 경험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게임 제작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었고, 한 곳에 8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계속 머물러 본 건 처음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인턴을 시작했고, 그게 계속 이어져 졸업학기와 동시에 회사를 다녔다. 쭈욱. 회사가 나에게 좋은 기억이 많은 곳이었으며, 배운 것도 많았다. 그 중 가장 귀중한 건 다시 같이 일해보고 싶은 멋진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는 점이다.
회사가 희망퇴직이 아니라 자발적 퇴사라는 말을 택한 덕에, 동료들과 '자퇴'라고 줄여 부를 수 있었다. 그 말이 주는 느낌이 묘하다. 인생이 배움의 연속이라면, 여길 하나의 학교로 볼 수 있었고 그걸 이제는 졸업, 떠나게 되는 중이니까. 물론 자퇴는 졸업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미숙한 존재가 익숙해진 둥지를 떠나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2025년의 갈림길
이 퇴사가 계획에 없던 일이라 함은 그동안 내가 상황에 따라 흘러가며 살고 있었음에 가깝다. 연 초에 상황이 바뀌며 크게 충격을 먹은 후로,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순응하며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2025년을 내가 그렇다고 허투루 보냈다는 말은 아니다. 늘 회사 일에 빠져지내며 있다가 숨돌릴 틈이 생겨서 그걸 열심히 채워나갔다.

연 초에 내부 사정으로 Windless 게임 프로젝트를 떠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지역과 언어가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도 알기 때문에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대신, 팀은 내가 그동안 벼르고 있던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IP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업무 외 시간에 틈틈히 해오던 일이다. 비록 게임과는 거리가 먼 작업이었지만, 휴식을 취하고 한 해를 그 일에 오롯이 쏟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홀가분함도, 그 원고를 무사히 마쳐 팀에 제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일 것이다. 눈마새를 계속해서 IP로 이어가기 위해, 이젠 내 손을 떠나 남긴 그 작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일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 나를 챙기는 다른 일에도 관심을 가졌다. 글쓰기를 시작했고, 외국어 공부도 놓지는 않고 이어왔다. 안 가본 곳들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어 내 앎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빈둥대는 나 자신을 두고 혼자 불안에 떨며 자책했을 텐데, 이제는 그렇지 않으려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다. (정말 이건 이상하고도 고질적인 강박증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 받는.)
이런 2025년을 보내고 있었기에, 연말에 회사에서 희망퇴직 공고를 보고 오히려 홀가분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열정을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게 배워나가는 해를 보냈으니까. 만약 프로젝트에 계속 몸 담고 있었다면, 책임감이 강한 성격 상 회사의 큰 방향전환에 대해 꽤 오랫동안 괴로워했을 것이다.
일을 대하는 마음
이 회사에서 나는 종종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렇다고 일을 혼자 떠맡았다는 뜻은 아니다. 학교 다니며 겪은건 협업의 연속이었고, 조금 더 나은 형태의 협업을 알고 싶다고 인턴면접을 두드렸으니까. 그렇게 배웠다. 여기서 나는 내 옆의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나름의 반골 기질이 있었다. (게임회사 특일지도.)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나 마음에 드는 지점을 쉽게 꺾는 건 여전히 싫었다. 처음으로 맡게 된 프로젝트에 버거워하는 나한테 팀장님이 했던 말도 어렴풋이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협업은 하되, 타협하지는 말라는 이야기. 물론 그 말은 청개구리 마냥 말을 안 듣겠다는 뜻이 아니라, 창작에서의 타협이 때로는 꼭 지켜야 할 것까지 깎아내리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세상에는 분명 할 수 있는 타협도 있으니까. 다행히 회사 역시 이런 반골 기질이 가득한 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는 편이었다. 규모가 큰 조직이다 보니 변화의 속도는 느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제로 달라지는 것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렇게 주변의 눈치는 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순적인 성격 탓에 방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오래 영향을 받는 편이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내가 맡은 역할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생각하는 그 과정은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멘탈도 터져보고.
그렇게 나는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어떤 일에 강하게 열정을 가질 때,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도 조금씩 익혔다.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기에, 나아가는 속도뿐 아니라 주변을 살피는 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툰 부분도 많고, 무엇이 정답인지 분명히 아는 상태는 아니다.
무엇이 남았을까
퇴직을 앞두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한계선을 넘다 아트북을 함께 작업했던 분들과는 “그때 참 재미있었죠”라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다.
물론 그 시간을 한 장면으로 잘라놓고 보면, 재밌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매일이 즐겁기만 한건 아니었고, 괴롭기도 하며, 감정이 크게 오르내리는 시기였으니까. 그럼에도 동료들과 헤어짐으로 그 말을 나눌 수 있는 건 함께 힘든 시간을 지나 결국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는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나를 계속 창작업계에 종사하게 만드는 마법이기도 하고.
동료들은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회사에서 겪었던 여러 순간을 돌아보면, 결국 이 말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몸 담은 프로젝트에 끝까지 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돌이켜보면 무려 1년의 정리 시간도 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는 남아 계신 분들이 더 멋지게 이어가 주시리라 믿는다. 회사를 떠난다니 섭섭하지만, 이 업계란 돌고 도는 법이니 지금은 헤어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함께, 혹은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람으로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빈자리는 결국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건 삶에서도 그렇다. 2026년에는 환경을 바꿔 바다 건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퇴사하고 이직이 아니라 아예 한국을 떠나보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회사 덕분이다. 누군가는 이번 퇴직금에 대해 '용기지원금'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나한텐 꽤 맞는 말이라 웃기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경험하고 얻을 수 있었던 것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살아가보자 한다. …적어도 계속 관찰하고 배우며,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다. 라고 생존기의 말미에 적었던 다짐이 만족스러운 결실로 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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