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게임은 어떤 느낌일까?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전부 호기심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가 겁도 없이 양자를 논하는 클럽에 들어갔다가 과학자들 사이에 떨어진 한 명의 인문학도가 되어버렸거든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작은 모임이 열리게 됐는데, 주제가 ‘퀀텀 게임(Quantum Games)’이었습니다. 양자컴퓨팅이 게임 개발에 어떤 가능성을 만들까? 란 주제로 이야기를 모임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복잡할 것 같은 주제였지만 "게임"이라는 것이 어떻게 엮일지 궁금해서 호기롭게 신청했습니다.
물론 다 이해는 못 했지만, 간만의 두뇌 풀 가동을 한 덕택에 모임은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인문학과 이공계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기술적 호기심
새로운 기술은 비디오 게임이 주는 경험의 재미에 혁신을 가져오곤 합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화면과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감각을 알게 됐습니다. 터치하기입니다. 그건 곧 ‘놀이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후르츠 닌자나 앵그리버드 같은 게임들입니다.
제 고등학교 때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는데 친구들하고 푸룻 닌자를 엄청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입력 자체가 얼마나 재밌던지요.

지금은 또 다른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양자 컴퓨팅, 양자 센서 이런 단어들이 이제 실험실을 벗어나 점점 일상에서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중인 것 같거든요. 그게 아니었으면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서 만화랑 유튜브, SNS 등의 도파민들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제가 저 모임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양자적 세계’가 게임이 다루는 언어로 옮겨진다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재미를 경험하게 될까요?
그래서 양자컴퓨터가 뭔데?
모임이 유익했다고 했죠? 덕분에 큐비트, 중첩, 얽힘 같은 단어들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복잡한 공식들이 칠판에 적히긴 했는데, 거기서 벽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기가 된 기분으로 예뻐보이는 개념만 주워갔습니다. 그러면서 그 개념들을 디자인의 재료로 어떻게 써볼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로 어떤 놀이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게임 디자이너가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양자물리와 양자 컴퓨팅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한 건 이렇습니다.
-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 결과는 관측하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 두 정보가 얽혀 있다면, 한쪽의 변화가 즉시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결정되지 않은 세계를 계산의 일부로 다루는 건, 게임 세상에서도 이미 익숙한 일이 아닌가요? 그 계산들이 모여 게임의 룰 부터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양자 게임 개발 흐름에 탑승하기

저는 이 영역에 대해 이미 여러 시도가 진행되는 것에 놀랐습니다.
제가 검색을 통해 읽게 아티클은 A Chronicle of Quantum Technologies in Game and Software Development 입니다. 아티클에 따르면, 300개가 넘는 양자 게임 관련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그 게임들은 주로 양자역학의 여러 측면을 게임으로 녹여내려는 시도였고요. 그리고 게임 잼 행사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IBM은 Qiskit 같은 오픈소스 개발 키트를 통해 누구나 실제 양자 시뮬레이션을 다루고, 게임 엔진이나 인터랙션에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대중적이진 않아도, 무언가가 태동하려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저도 뭔가 생각을 하나 얹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같이 양자컴퓨터가 뭔지 잘 몰라도, 익숙한 게임 구조 속에서 그게 뭔지 경험해 본다면 사람들은 이 주제를 한 번쯤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요?
생각 난 두 가지의 아이디어
마침, 흥미로운 재료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요즘엔 8번 출구같이 공간 안에서 이상 현상을 감별하는 감시형 게임 구조가 꽤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장르들은 구조적으로 패턴 속에서 이질성을 찾는다는 점에서, ‘관측’과 ‘판별’을 다루는 양자적 사고의 틀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꽤 오래 연구해 온 '눈물을 마시는 새' 라는 세계가 생각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걸 위해 작업하진 않지만요. 그 세계에 "규칙이 없음"이라는 두억시니란 존재들이 있는데, 그 요소가 양자 역학과 닮아 보였습니다. 무려 공식이 양자역학을 판타지로 지원하는 소설이라니 정말 귀하네요.
소설 속에서 두억시니는 신을 잃어버리며 그렇게 됐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이 세계의 모든 전승들을 모아서 관리하거나 문제가 터질 때 해결하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는 신'을 모시는 인간들의 사찰, 하인샤 대사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재료를 PPAP 밈처럼 합쳐보기로 했습니다!
플레이어는 하인샤의 승려입니다. 그런데 세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갑자기 두억시니가 세계 곳곳에 등장해 버린 거에요! 교단은 이걸 수습하고 싶어 합니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 두억시니는 "규칙이 없다"로 규정된 존재들입니다. 이 존재의 흔적들 때문에 생긴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현상은 아직 어떻게 붕괴될지 모릅니다.
- 플레이어는 세계에 발생한 이 현상을 ‘감정(觀測)’하고 교단의 요청서에 따라 중첩을 바르게 붕괴시켜야 합니다.
- 이를 위해 Qiskit 기반의 게이트를 이용한 신기한 도구들을 들고 파견을 나갑니다.
- 원작에서도 도깨비들이 만든 몸이 투명해지는 감투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릇 등이 등장하니, 세계관 설정을 활용한 아이템을 만들어 볼 법 합니다.
- 요청서에는 = 현장의 필수 조건과 선호 조건이 쓰여있습니다. 필수 조건은 반드시 복원해야 할 상태고, 선호 조건은 가능하면 만족시킬 목표이지요.
- 플레이어는 도구를 조작해 공간을 복원하되, 그로 인한 노이즈가 심하게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이렇게 관측을 통해 불확실성의 세계를 하나의 실재로 확정합니다.
여기까지 상상하고 나니, 피로가 찾아왔습니다.
게임으로 만들려면 아마 더 다듬는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관측과 붕괴가 어떤 게임플레이로 구현되는지, Qiskit 기반 도구는 어떻게 동작하는지 아직 모르거든요. 노이즈는 어떤 결과가 생기고, 관찰 방식이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되는지 같은 것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가 늘어놓은 이 생각들이 막상 구현할 때 충분히 양자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이 IP는 제가 멋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니 정말 게임 개발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만들어볼 만한 것의 리스트 한쪽에 올려둬야겠습니다.
불확실성과 함께 노는 법
고민을 너무 한 탓일까요.
며칠 전, 비구 스님과 바둑을 두는 꿈을 꿨습니다.
그 바둑은 우리가 아는 규칙과 달랐습니다. 그 스님은 돌을 교차점이 아닌 빈 공간에 두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저의 돌인 백돌을 두려 손을 뻗었는데, 사실 스님이 놔둔 다른 돌에 의해 제가 백돌이라고 생각했던 돌이 검은색으로 바뀌어서 오히려 제 돌이 바둑 규칙에 따라 모두 포위되어 죽는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자마자 ‘어, 이게 양자 게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긴 했지만, 나중에 정말 Quantum Go라는 게 있다는 걸 찾아보고 ‘와,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참고로 제 꿈보단 합리적인 방식의 게임이었습니다.)

이렇게 꿈 얘기까지 알차게 양자 게임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바를 털어놓긴 했지만, 사실 여전히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음 모임에도 나와줄 거지?”라며 걱정스럽게 웃어보이던 클럽장님의 얼굴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즐겁게 계속 나가보게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정말로 그 복잡한 개념을 놀이로 바꿔보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고, 여기에 지나가듯 썼던 아이디어가 진짜 플레이할 만한 무언가로 발전할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때까지 사소하더라도 즐겁게 양자 세계를 가지고 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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